초가을 새벽에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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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새벽에

-이규보


시인은 본래 느낌이 많아

나뭇잎 하나 져도 가을인가 놀라네.

비록 더위가 남아 있다곤 하지만

새벽이면 두꺼운 갖옷 생각이 나네.

어제만도 남쪽 시내에 목욕하면서

갈매기처럼 둥둥 떠서 헤엄도 쳤었지.

오늘 아침 새파란 냇물을 보매

벌써 그 맑은 물 보기만 해도 오슬오슬해.

시절은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흘는 세월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네.

내일은 이미 오늘이 아니니

검은 머리가 흰 머리로 변해 가네.

우리 인생은 잠깐 하는 타향살이 같아

백 년을 가다 보면 그만 끝나려 하네.

어찌하여 쥐구멍 속에서 망설이는 쥐처럼

거취를 일찍 헤아리지 못하고

한 치 조그마한 가슴에

끝없는 근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본디 가진 뜻을 이루려 노력하여

용감히 공후(公侯)의 자리를 따 내거나

아니면 벼슬 따윈 하지 말고

힘써 논밭을 갈고 추수하여

해마다 백 섬을 술을 담근다면

한평생 술지게미 언덕에서 늙어 가리라.

죽어서는 소나무 밑 흙이 되나니

귀했거나 천했거나 마찬가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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