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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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Tefal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신다.

문득, 옛날 난로에 물 끓여서 차를 마시던 시절이 생각난다.

난로위에서는 황금색 주전자가 연기를 내뿜고, 장작타는 소리가 찌글찌글 들리는 그런 곳에서

손시려워 손을 감싸고 호호 불면서

차를 마시고 싶어진다.

그러다 약 10년전 좋아서 저장해 놓았던 작자를 알수 없는

글귀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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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싸락싸락 내리는 날


나는 친구와 함께 간이역에서 서있었다.


오버 깃을 세워도 추운 이 겨울


하나의 원통형의 난로에선 무료한 시간이 찌찍 찌직 타오르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 내리는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가끔 양은 주전자에서 엽차 끓는 소리가 나고


우리가 버린 추억들이 곱게 접혀


유리창에 하얗게 성애로 피어오르고


친구와 나는 차가 올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이야기가 없어도 좋은 날에


그저 눈 내리는 풍경과 톱밥 타는 소리


그리고 가끔 주전자 뚜껑이 덜컹거리거나 푸푸 강물이 숨쉬는 소리


우리는 그러한 자연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오래오래 말도 없이 서 있었다.


겨울은 자꾸만 길어지고 그 길어진 통로를 비집고


간간 낭만과 꿈을 내려 주는 눈을 바라보면서


기차가 섰다 가도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친구도 떠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간이역


깨끗하고 순결한 눈 속에서 나는

더욱 맑아진 눈 내리는 소리와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


그리고 하얗게 익어 가는 한 장의 추억을 보고 있었다.

 

And